전쟁의 발발원인
먼저 전쟁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알아보자,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에피담노스 사건과 포피다이아 사건이다. 에피담노스는 이오니아 만 입구의 오른쪽에 있는 도시국가이다. 에피담노스에 들어온 것은 케르키라인이었다. 시간이 흘러 에피담노스는
보다 인간 본성에서 비롯 된 것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2) 멜로스의 대화
‘멜로스의 대화’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 즉,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현실주의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의 군사강국이던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신흥강국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전쟁 중이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민주정치의 아테네와 과두정치의 스파르타간에 일어난 정치체제의 싸움이었다. 이 전쟁은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하였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귀족과 시민들은 부패해져 갔다. 전염병의
서양사의 전개
서양의 역사는 한 마디로 팽창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지중해로부터 지구전역으로
- 최초의 서양문명을 이룬 고대세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한 남부 유럽 및 그 인근지역 :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에게문명)
-> 그리스 : 기원전 8세기경 폴리스 형성
-> 기원전 4세기 말엽 이후 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은 묘하게도 현대 우리의 한국전쟁과 같이 남북이 서로 대적해 대략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해서 싸웠던 전쟁이었다. 또한 한쪽은 민주적 국가였고 다른 한쪽은 전체주의, 군국주의 국가였다. 주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로 한 이 정치ㆍ군사사(史) 8권은 B.C.411년가을까지의 기술(記述)로서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러나 종교나 도덕에 구애됨 없이 오로지 정치적 관점에서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투키디데스는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의 작
2. 주요 등장인물의 특성
① 니키아스
무엇보다도 평화라는 가치를 우선시 하는 인물이라 특징지을 수 있다. 투키디데스의 말을 인용하면 그는 신사적이었고 이러한 연유로 결국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 그는 시칠리아 전투가 시작되자 전쟁반대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출정하게
Ⅰ. 펠로폰네소스전쟁
1.배경
펠로폰네소스전쟁은 그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세계대전과 같은 규모의 큰 전쟁이었으며, 그리스의 전성기에 발발했고 전쟁의 끝과 더불어 그리스는 쇠퇴기를 맞이한다. 이 전쟁은 아테네 제국을 필두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필두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정착하여 아르고스와 스파르타, 메세니아를 세웠다고 한다.
흔히 역사에서 다루는 고전기 그리스의 큰 전쟁들은 트로이 전쟁,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전쟁,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이다. 이중 트로이 전쟁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통해 다루어지고, 고
전쟁이후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대라고 해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주도하면서 민주주의의 절정과 황금기를 보여주게 된다. 이를 스파르타가 시기했고, 그리스 공동금고를 아테네가 가져가면서 스파르타는 아테네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